한국은 세계에서 AI에 가장 우호적인 여론을 가진 나라다. 동시에 AI가 일자리를 대체할까 봐 가장 부지런히 AI를 배우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 두 문장은 모순처럼 들리지만, 공개된 조사 데이터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구조로 이어진다. 퓨리서치센터의 25개국 조사, 스탠퍼드 AI 인덱스, 한국갤럽의 세대별 조사를 교차해 그 구조를 따라가 본다.
퓨리서치센터는 2025년 1월 8일부터 4월 26일까지 25개국 성인 28,333명을 대상으로 AI 인식을 조사했다. "AI 확산에 대해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고 답한 비율은 25개국 중앙값이 34%였다. 한국은 16%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같은 항목에서 미국은 50%였다.
주목할 점은 한국이 중앙값에서 조금 낮은 정도가 아니라 25개국 중 가장 낮았다는 것이다. 기술 수용도가 높은 나라들 사이에서도 한국의 위치는 예외적이다. 이 격차는 개인 취향의 합이라기보다 사회 구조에서 나온 결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한국의 AI 낙관론은 자연발생적이지 않다. 정부는 AI를 국가 성장 동력으로 지정하고 장기간 홍보와 투자를 집중해 왔다. 현 정부는 한국을 미국·중국과 함께 'AI 3강'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대통령 직속 국가AI전략위원회를 발족했으며, 대규모 컴퓨팅 자원 확보와 국산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에는 세액공제와 저리 금융이 뒤따랐다.
정식 명칭은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 2024년 1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64명 중 260명 찬성으로 통과했고, 2026년 1월 22일 시행됐다. 2020년 7월 최초 발의 이후 4년여에 걸쳐 19개 법안이 통합된 결과물이다. EU AI법에 이어 세계 두 번째 포괄 AI 법제이며, 규제보다 진흥에 무게를 둔 '고영향 AI' 중심의 최소 규율 방식을 택했다.
정책 기조는 안전보다 개발 속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스탠퍼드 AI 인덱스 2026에 따르면 한국인의 70%는 산업 보호를 위한 규제보다 AI 혁신을 통한 과학·의료 발전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정부의 방향과 여론의 방향이 같은 곳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스탠퍼드 HAI가 발표한 AI 인덱스 2026은 국가별 성과를 비교적 건조하게 보여준다. 한국은 '주목할 만한 AI 모델' 보유 수에서 5개로 세계 3위에 올랐다. 1위 미국은 50개, 2위 중국은 30개다. 격차는 크지만, 전년 4위에서 한 계단 올라 캐나다·프랑스·영국(각 1개)을 제쳤다.
절대 규모보다 눈에 띄는 것은 밀도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AI 특허 14.31건으로 2년 연속 세계 1위였고, AI 도입률 증가 폭에서도 세계 1위(전년 하반기 25위 → 18위, 4.8%p 상승)를 기록했다. 인구와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한국은 자기 체급보다 위에서 싸우고 있는 셈이다.
이 타임라인은 경제 성장사인 동시에 학습된 태도의 역사다. 기술 파도를 먼저 타는 쪽이 앞서갔다는 경험이 반세기 동안 반복 확인되면서, "신기술은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이득"이라는 집단적 기본값이 자리 잡았다. AI 낙관론의 토양은 여기에 있다.
속도 중심의 접근은 검증 단계를 건너뛰게 만든다. 실제로 국가 어젠다가 현장과 충돌한 사례가 최근 2년 사이 두 건 뚜렷하게 나타났다.
2025년 3월 초등 3~4학년, 중1, 고1의 영어·수학·정보 과목에 도입됐다. 그러나 활용률 점검 결과 평균 활용률 8.1%, 한 번도 접속하지 않은 학생이 평균 60%에 달했다. 교육부는 2026년 업무보고에서 '교과서'가 아닌 'AI 교육자료'로 지위를 조정하고 학교 자율 선택으로 전환했으며, 전환 후 채택률은 32.3%에 그쳤다.
현대차그룹이 CES 2026에서 공장 투입형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공개하고 2028년 미국 메타플랜트(HMGMA)부터 단계 투입하겠다고 밝히자, 노조는 "노사 합의 없이는 단 1대도 들어올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이후 부분 파업으로 이어졌고, 이는 자동차 업계에서 휴머노이드 도입을 이유로 공장 가동이 멈춘 첫 사례로 기록됐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합의 절차의 부재가 문제였다는 점이다. AI 교과서는 파일럿 검증 없이 전국 단위로 나갔고, 아틀라스는 노사 협의 이전에 대외 발표가 먼저 나갔다. 낙관론이 높은 사회일수록 "일단 도입하고 문제는 나중에"라는 순서를 택하기 쉽고, 그 비용은 현장에서 청구된다.
| 분야 | 낙관론 | 우려 | 현재 상황 |
|---|---|---|---|
| 교육 | AI 교과서로 맞춤형 학습 | 검증 없는 전면 도입, 낮은 활용률 | 교육자료로 전환 |
| 제조업 | 휴머노이드로 생산성 향상 | 일자리 대체, 합의 절차 부재 | 노사 갈등 |
| 반도체 | HBM 세계 시장 점유 확대 |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의존성 | 성장세 유지 |
| 청년 노동 | AI로 업무 효율화 | 고용 불안과 병행되는 사용 증가 | 양가감정 |
| AI 거버넌스 | AI기본법 시행으로 법적 기반 마련 | 안전보다 개발 우선 기조 | 국제적 주목 |
거시 지표가 아니라 생활 속 사용으로 내려가면 또 다른 층위가 보인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AI로 사주·운세를 본 경험률은 20대가 46%로 가장 높았다. 30대 40%, 40대 36%, 50대 23%, 60대 이상 8%로 연령이 낮아질수록 가파르게 올라간다. 같은 조사에서 점·사주를 믿는다고 답한 국민 비율은 40%였다.
흥미로운 지점은 '점·사주를 믿는 비율'은 40%로 4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 형식만 AI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새로운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된 수요가 새 인터페이스를 만난 셈이다. 20대에서 경험률이 가장 높은 것은 이 세대가 AI에 가장 친숙하면서 동시에 취업·주거 같은 불확실성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다는 두 조건이 겹친 결과로 읽힌다.
이 데이터는 한국의 AI 수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준다. AI는 업무 생산성 도구로만 들어온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다루는 도구로도 들어왔다. 낙관론 지표가 높게 나오는 배경에는 "AI가 좋아서"만이 아니라 "AI라도 있어야 해서"라는 동기가 섞여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의 AI 낙관론은 ①국가가 반세기 동안 설계하고 반복 학습시킨 태도, ②반도체 공급망을 통해 실제 경제 지표로 확인되는 이익, ③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개인의 방어 심리가 겹쳐 만들어진 합성물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AI를 좋아한다"는 문장은 절반만 맞다. 퓨리서치 조사에서 우려가 가장 낮게 나온 나라와, AI 교과서·휴머노이드 도입에 가장 격렬하게 반발한 현장은 같은 나라다. 여론조사의 평균값은 이 두 얼굴을 하나의 숫자로 눌러 담고 있을 뿐이다.